와이탕이 조약
조약이 작성되고 번역되어졌습니다. 조약은, 논쟁을 벌인 하루 뒤인, 1840년 2월 6일에 베이 오브 아일랜드에 있는 와이탕이에서 사인되었습니다. 43명의 북쪽 지역의 족장들이 그날 조약에 사인하였고, 그후 8개월동안 전국을 돌며, 전지역의 500명 이상의 마오리 족 족장들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조약이 사인된 땅과 건물은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 와이탕이 역사 보존지는 유명한 광광지가 되어있습니다. 와이탕이 조약지로는 커다란 마오리족의 회의 장소,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물, 역사적인 플래그스태프,그리고 아주 긴 와카 타우나(마로리족의 전쟁용 카누)가 있습니다.
열린 해석
이 시대에 이루어진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들 사이에 사인된 조약들과 계약서들이 거의 대부분 잊혀진 반면에 와이탕이 조약은 아직도 뉴질랜드의 법과 사회의 중심으로서 남아있습니다. 이 조약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국가의 건국 문서로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약이 사인된 이래, 와이탕이 조약의 해석에 있어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습니다.
영어와 마오리 족의 언어로 된 이 조약은 모두 3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조약이 법률에 관한 경험이 조금밖에 없거나 아니면 아예 없는 사람들에 의해 씌어지고 번역되었기 때문에, 마오리족의 번역은 영어버전과 해석에 있어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첫번째 조항은 통치권에 대해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어 버전에는 마오리는 그들의 '카와나탕아'(통치권 또는 통치 직위)를 영국 황실에 넘긴다고 명시되어 있고 마오리 부족의 버전에는 권력을 공유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두번째 조항에는 '티노랑아티라탕아' 또는 족장제도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마오리 부족 버전에는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타옹아'(보물) 소유에 대한 더 넓은 권리를 약속하고 있으며, 영어 버전에는 마오리들의 땅, 숲, 어장, 그리고 다른 부동산에 대한 통제권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오리족 버전에는 '타옹아'라는 말의 사용에 있어 언어와 문화같은 것들의 소유와 보호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조항은 마오리족에게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권리를 보호함과 동시에 모든 영국의 것에 대한 권리도 약속하고 있습니다.
와이탕이 법정
이 조약이 뉴질랜드의 '건국 문서'라고는 하지만, 조약에서 마오리족에게 약속되었던 많은 권리들이 사실상 무시되어졌습니다. 와이탕이 조약에서 제시된 보호에도 불구하고, 마오리들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상당한 양의 땅을 잃었습니다. 땅을 잃은 방식이 종종 의심스러웠으므로, 이는 마오리들의 심한 저항을 이끌어냈습니다.
이에 따라, 1975년에 정부는 와이탕이 법정을 설립하였습니다. 이 법정은 와이탕이 조약을 의미 있고 살아있는 문서로서 존중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이후로 와이탕이 법정은 마오리 이위(부족, iwi)들이 제기하는 많은 요구들에 대해 판결을 내렸고, 많은 경우 금전적인 지불이나 땅의 형태로, 보상이 내려졌습니다.
지난 10년동안, 정부와 주요 이위(부족)사이에 큰 사건이 많이 성사되었으며, 보상의 많은 부분이 부족민들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투자되었습니다.
그럼, 와이탕이 조약의 어떤쪽의 해석이 맞는걸까요? 답은 양쪽 모두 맞다 입니다. 이는 양쪽 버전 모두에 사인이 되었고, 와이탕이 법정이 의사 결정을 할때 양쪽 모두의 문장을 참고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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